식문화 아카이브
한식이 우리 식문화의 중심에서 탄탄하게 숨쉬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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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식문화 연구가
이상희
지역 식문화 연구가이상희Local Food Culture Researcher통영의 식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삼도수군통제영입니다.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시는지요?20여 년 동안 통영 음식을 연구하며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한 가지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도해를 품은 지리적 위치, 삼도수군통제영을 통한 고급문화의 유입,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녹아든 외래 문화 등이 뒤섞이고 교류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꽃피웠으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시절 음식, 계절 음식을 뛰어넘어 거의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월마다 바뀌는 음식을 먹을 만큼 풍부한 통영의 식재료가 삼도수군통제영을 통해 보다 고급화된 조리법과 만나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풍부한 자원에 ‘부’가 더해지니 더 맛있게 더 새롭게 먹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졌을 테고요.1월(방풍탕평채) / 2월(해조류, 비빔떡, 털게찜, 개조개 유곽) / 3월(쑥시루떡, 해삼탕, 병아리국) / 4월(쑥, 햇미나리, 어린 도미를 이용한 상사리국, 볼락) / 5월(매화를 이용한 매실주) / 6월(개장국, 삼복팥죽) / 7월(호박전, 박나물) / 8월(나물비빔밥) / 9월(국화전, 인절미) / 10월(팥시루떡) / 11월(팥죽) / 12월(대구, 물메기)하긴 생선 한 마리조차 허투루 조리하는 법이 없더라고요. 수산물 집산지이니 신선도는 의심할 필요가 없지요. 당연히 구워서 살짝 소금간만 해도 맛있고요. 한데 통영 생선구이는 여기에 ‘향’을 입히는 게 이색적입니다. 간장과 설탕을 기본으로 한 양념을 곁들이는 식인데, 바삭하게 구운 생선 위에 올린 자작한 간장 양념은 통영이 근대 문화를 얼마나 앞서 받아들였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1914년 마산만 해도 간장 공장이 한 곳뿐이었는데, 통영에는 세 곳이나 있었습니다. 무역의 요충지였던 만큼 새로운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현지화’시킨 겁니다. 게다가 생선구이라고 해서 한 종류만 올리지도 않습니다. 멸치와 볼락, 고등어와 갈치 등 그때그때 여러 종류의 생선이 나는데 단단한 살, 물렁한 살, 달콤한 살, 고소한 살 등 다양한 식감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장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신선한 재료에 통영만의 조리 문화가 더해진 거군요. 통영 약과, 통영 도미찜, 통영 유과까지 같은 음식에도 통영만의 지역색이 확실히 드러나는데 그 안에 자연환경과 문화가 모두 융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도미찜만 해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조리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흔히 도미찜 하면 생선을 다듬고 거기에 고명을 얹어 내는 게 보통인데 통영식은 손이 많이 갑니다. 도미 등을 갈라 내장을 빼내고 살을 발라 육고기와 갖은 채소를 섞어 소를 만든 후 등에 이 소를 넣어 찌지요. 여기에 오방색 고명으로 화려함을 더하면 비로소 통영식 도미찜이 완성됩니다. 통영 약과도 그렇습니다. 흔히 약과는 밀가루에 꿀과 기름을 넣어 반죽한 뒤 튀겨내는 게 보통인데, 통영에서는 독특하게 생쌀을 볶아 빻은 가루에 소금과 후춧가루, 계피 가루를 더해 반죽하고 기름에 튀긴 다음 꿀을 묻힙니다. 비단 바다뿐 아닙니다. 고구마부터 시금치까지 통영은 흙도 남다른데요. 어떤 점에서 차별화될까요?통영은 김장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동지가 지나서야 담그고, 김장을 아예 담그지 않는 집도 많지요. 기록에 따르면 하우스 농업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겨울에도 푸른 채소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기온이 온화하고 흙이 산성화되지 않아 채소 역시 영양을 가득 담은 것은 물론 맛도 우수합니다. 유독 많은 조리 단계를 거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채취해서 바로 즐기는, 번거로운 조리 과정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긴다고 할까요? 원재료의 맛을 즐기는 단출한 음식과 다양한 조리법을 시도하는 고급 음식 문화가 함께 발달한 것. 이 또한 통영만이 지닌 특색이라 할 수 있겠지요.단순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격식이 있고 고급화된 음식도 많습니다.물론입니다. 많은 조리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고 해서 쉽고 빠른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나물비빔밥도 그렇고, 단순해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제법 있어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오롯이 즐기는 한편 다양하고 창조적인 조리법에도 자유로웠던 겁니다.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의 문화, 물류 중심으로서의 자본이 만나면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겁니다. 생선이나 해산물 역시 어떻게 손질하고 삶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천지 차이니까요.통영 음식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단순히 전통이라거나 혹은 향토 음식이라고 치부하다 보면 과거에 머물게 됩니다. 보다 다양한 맛을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고요. 통영 음식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계속 계승〮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같은 식재료라도 전혀 새로운 조리법이 탄생할 수도 있고 혹은 전통 방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요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건 과거에 통영이 다양한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현지화시킨 것처럼 통영만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이야말로 박물관이 아니라 ‘오늘’의 식탁 위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니까요.
연구
인물
전통 음식 연구가, 통영 거주
이명금
전통 음식 연구가, 통영 거주이명금Traditional Food Researcher & Local Resident10여 년간 사찰 음식을 비롯한 전통 음식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영만의 식문화 특색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사찰 음식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신채란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일컫는데 파와 마늘, 달래와 부추, 흥거를 말합니다. 사찰에서는 이를 대신해 향채로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방앗잎이지요. 신기하게도 통영 식문화와 연결되는 지점이에요. 특히 통영 음식은 갖은양념을 더하기보다 홍합이나 조갯살 등의 천연 조미료를 이용하고 되도록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사찰 음식과 통영 음식 모두 식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으레 먹던 멸치 간장(어간장)이 지금에 와서 보니 재료 본연의 감칠맛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셈이었어요. 다양하고 질 좋은 해산물이 통영의 자랑이지만 그 맛을 ‘제대로’ 즐기고자 한 통영의 식문화야말로 진정한 ‘미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국이나 나물을 무칠 때에도 어간장(멸치 간장)과 다진 홍합을 넣으시더라고요.일종의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하는 거죠. 통영에서는 예로부터 어간장을 많이 사용했는데 일반 간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달착지근한 맛이 납니다. 통영에서는 멸치가 많이 나는데, 생으로 즐기기도 하고 멸치 쌈밥을 해 먹기도 합니다. 멸치젓갈은 흔한 반찬 중 하나인데, 멸치젓이 어느 정도 삭으면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밥과 함께 먹고, 남은 진액은 김치를 담글 때 넣거나 액젓으로 쓰지요. 그리고 그 찌꺼기에 소금을 넣어 다려 만드는 게 멸치 간장, 지금으로 치면 어간장이고요. 멸치의 단백질이 발효되면서 자연히 감칠맛이 더해질 수밖에 없답니다. 소금(나트륨)이 아래에 깔려 염도와는 무관하면서도 은근히 달달한 짠맛이 완성되는 거지요. 통영에서는 고추장을 담글 때에도 메주 대신 간장을 사용했는데, 색깔은 검지만 천천히 발효되고 부패도 되지 않아 유용했답니다. 더운 지방이니만큼 맛과 관리라는 두 가지 측면을 두루 만족시켰던 거지요. 익고 묵고 발효하는 속에서 특유의 감칠맛도 살아났고요. 홍합도 만능 양념입니다. 잘게 다져 나물에 무쳐도 좋고, 특유의 주황색이 식욕을 돋우기도 하고요. 통영은 바닷가 마을이라 술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데, 홍합에 함유된 타우린이 숙취 해소에도 큰 도움을 줘 여러모로 기특한 식재료인 셈입니다.방아전도 그렇고 통영 음식에 된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더라고요.통영에서는 예로부터 된장을 많이 사용했어요. 토속 음식인 시락국도 된장을 기본으로 끓이지요. 지금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된장은 특히 마른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가 탁월하답니다. 통영은 수산물 집산지이다 보니 워낙 많은 수산물이 잡히는 데다 그걸 다 소화할 수 없어 오래전부터 생선을 말려 한참 동안 즐겨 먹는 문화가 발달한 건데요. 이렇게 말린 생선을 찔 때 된장 푼 물을 사용했답니다. 은은하게 밴 된장 향은 비린내를 잡아주는 동시에 감칠맛을 끌어올려주지요. 그냥 물에 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한마디로 ‘입에 착 달라붙는’ 생선 본연의 맛을 배가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뚝딱 만들 수 있는 벼락김치도 인상적인데요.벼락김치는 채소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조리하는데, 호방하고 진취적인 통영 문화를 닮아 있지요. 김장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통영에서는 오래 익혀 먹기보다 재료의 신선함을 그대로 즐기거나 익혀도 2~3일 내에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게 익숙하니까요. 그때그때 나는 채소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열무와 고구마 줄기예요. 고구마 줄기도 붉은 순과 푸른 순을 다르게 조리하는데 일반적으로 푸른 건 데쳐서 나물로 먹고, 붉은 건 김치로 담가 먹어요. 소금간을 하지 않아 아삭한 식감을 그대로로 살리고 어간장으로 간을 맞추지요. 되도록 양파 같은 부재료도 넣지 않아요. 다른 재료로 단맛을 더하기보다 식재료 자체의 단맛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거지요. 통영 땅에서 자란 구황 작물은 유독 단맛이 높아 사실 별도의 양념이 필요하지 않답니다.최근 전통 음식이라 여겨지던 빼떼기죽이나 청각 등이 건강식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어릴 적부터 빼떼기죽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전분이 많아 식어도 흘러내리지 않아서 도시락으로 싸 갈 정도였으니까요. 청각도 마찬가지지요.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식재료로 홍합과 함께 뚝딱 무쳐내면 나물이 되기도 하고, 얼음물을 부으면 냉국이 되기도 했답니다. 제게는 익숙한 식재료지만 어느 순간 통영의 이채로운 먹거리로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니 저로서는 반가운 마음이에요.전통 음식은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쉽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현대적인 조리법을 더해 새롭게 응용해볼 여지도 생기고요. 중요한 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하는 데 집중하는 것만큼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역시 사찰 음식과도 통하는 부분인데, 결국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말해주니까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즐기는 것. 곱씹어보면 바로 이것이 통영의 식문화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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